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순왕후(조선 단종) (문단 편집) == 개요 == [[조선]] 6대 국왕 [[단종(조선)|단종]]의 왕비. 단종보다 1살 많았으며, 본관은 여산. [[시호]]는 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이다. 여산부원군 송현수와 여흥부부인 여흥 민씨[* 정순왕후의 외조부인 민소생은 민대생의 동생이다. 민대생은 [[한명회]]의 장인. 즉, 한명회의 처와 송현수의 처는 사촌간이다.]의 딸이다. 여산송씨의 중시조이자 고려 원종때 찬성사 중찬을 지낸 송송례의 8대손으로, 송송례는 왕의 밀명을 받들어 삼별초를 동원하여 권신 임유무를 처단하고 무신정권을 끝내므로써 왕정을 복고시킨 공이 있었다. 이에 두 아들과 손자들까지 고려말 권세와 지위가 높았던 세족이다. 정순왕후의 7대조는 추성보리찬화안사공신 도첨의사사중찬을 지낸 낙랑부원군 송분이며 5대조 송교는 문과를 거쳐 벼슬하던 중 아버지 송인(린)과 집안일족이 충선왕에 의해 주륙되자 벼슬을 버리고 운주산에 은거하였다. 고조부 송희는 후에 조선을 세우고 태종이 되는 이방원과 가까운 사이로 가정대부 공조전서를 지내며 태종의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 이는 송희가 태종의 부인 민씨(훗날의 원경왕후)의 외가 일족이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부 송복원의 누이는 정종의 7남 수도군의 부인이었고(정순왕후의 대고모) 부친 송현수의 누이도 세종대왕의 8남 영응대군에게 시집 가 왕의 며느리가 되었다. 영응대군은 단종의 친숙부로 대방군부인 송씨는 정순왕후의 친고모이자 숙모가 된다. 정순왕후 어머니 여흥부부인 민씨는 한명회의 부인인 황려부부인 민씨와 사촌지간이므로 예종비 장순왕후, 성종비 공혜왕후와 정순왕후는 외가로 6촌 지간이다. 부친 송현수와 세조도 어릴적 친하게 교류했던 죽마고우였으며 중종의 사부였던 순충보조공신 여원군 송연손이 정순왕후의 당숙인 것으로 보아 친정가문이 이전부터 왕실과 인연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말 [[충렬왕]]과 [[충선왕]]의 권력싸움에서 패해서 노비로 전락하는 풍파를 겪었고( 천운으로 집안의 인척이었던 [[기황후]]로 인해 그들의 신분이 복원된다) 다시 세조에 의해 집안이 두번째로 노비로 전락하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된 것이다. [[계유정난]] 이후 문종의 국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수양대군]]의 강권으로 단종과 혼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성대군]]과 [[혜빈 양씨]] 등 자신의 지지세력들이 숙청당하자 남편이 숙부에게 양위하면서 정순왕후도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로 존봉되었다. 하지만 [[단종복위운동]]이 계속되자 남편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되고 그녀 또한 서인으로 전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